2009년 10월 2일 금요일

달빛 드라이브(MOONlight DRIVE.) 3화

[3화 ; 추억]

 

 

또 다시 문자가 여러번 왔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유치한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을뿐더러 문자 하나하나가 귀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모른척 했더니 연락이 뜸해졌다. 덕분에 보고서 작성에 집중할 수 있었고 휴식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모처럼 대호를 만났다. 술 한잔 즐길 여유가 생겼다.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아직 실업자 신세라 일자리를 이곳저곳 구하다가 마침내 적당한 일자리를 구했는데 그 기분으로 오늘 나를 부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적당한 여자나 만나서 결혼이나 하는 것이라는데 벌써 여섯명의 여자와 해어지고 난 뒤라 그의 말이 더욱 걱정되게 만들었다. 그의 연애철학이 내게는 그저 처세술에 불과할 뿐 나에게 여자 좀 사귀어 보라는 대호의 충고는 맥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느정도 얼굴이 달아오르자 대호가 땅콩을 까다말고 뭔가를 기억해냈다.

 

“어제 중환 선배를 만났는데 지영이가 동현이랑 사귄단다 너 알고 있었지? 둘이 설마했는데... 참, 너 지영이 좋아했었잖아”

“그래?”

“싱겁기는 너 지영이랑 꽤 친했잖아 그 얘기 유명하잖아 학부시절에 대리 시험 보다가 둘이 걸려서...”

“두개의 달 봤어? 신기하던데”

“말돌리기는, 그래 봤어 예전에는 세상이 망한다. 지구 종말이다. 떠들어 댔지만 지금 봐봐 요즘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 아냐 어디 눈 하나 깜빡하니? 이제 신은 없어진 거야 아니면 잊어 버린거지”

 

대호의 그 말이 이상한 문자를 생각해냈다. 말할까 하다가 그냥 접어두고 갑자기 우울해져서 자리를 일어났다. 지영이 동현과 사귄다는 말은 정말 당황했다. 태연한척 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가슴이 덜컹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영을 생각할 수 없다고 가로등의 주홍색 불빛으로부터 느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작년에 교수한테 받은 중요한 공식을 잃어버려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느낌이 지금순간 가슴에 다가왔다.

 

문자를 보내는 것도 내가 먼저였고,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것도 나였다. 간단한 문자라도 보내고 나면 기다리는 그 즐거움은 정말 행복했다. 사진부였던 나는 몰래 지영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나는 그것들을 아주 소중하게 다루었다. 핸드폰 마저도 아꼈고 다이얼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가끔씩 밥을 먹었고 같이 수업을 들었다. 같이 걷는 길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듯 위태로웠고 그렇게 어렵게 친해졌지만 난 모든지 흐지부지해 버렸다. 감정을 드러내기 힘들면 그대로 삭혀버리고 만다 그 기억을 잊기 위해 뭐든지 머릿속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지영을 볼때면 입밖까지 나오려했던 ‘좋아해’란 말도 곧 흐지부지해 버린다. 뭔가 모자란듯이 보이는 자신이 부끄럽고 추해보였다. 그 만큼 난 지영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나는 한번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지영이 생각하는 내가 다를까봐 걱정이 되었다. 거절하게 되면 그나마 같이 있을 수 있는 친구의 우정마저 잃어버릴까봐 나는 두려웠었다. 지영 몰래 찍어놨던 사진들을 이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사진들을 모두 태워버릴까도 생각했다. 마음이 너무도 아려온다.

마지막 남은 담배를 피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일부턴 웬 지 바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두개의 달은 여전히 그렇게 떠있었다.

 

도서관 사서가 찾아준 보기 드문 책을 잔뜩 껴안고 나오는데 노교수의 연구팀에 같이 있는 나 보다 어리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는 지용을 만났다. 늘 부스스한 머리와 커다란 안경이 아무래도 나이를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연구실이나 교수님과 같이 세미나에 참석하곤 했다. 점심이라도 같이하자고 한다. 마침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 사람과 같이 점심을 먹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는 식성이 까다로웠다. 양파를 싫어해 골라냈지만 이상하게도 파는 그렇게 잘 먹을 수 없다. 또 미역국은 아예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해조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때문에 나도 미역국을 먹지 못했다.

 

“학교 식당은 맛이 없죠?”

“괜찮은데요. 저는 배만 채우면 되거든요.”

 

자취생활을 하다보면 끼니 때우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된다. 반면에 세끼 식사를 모두 챙길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된다. 중요한 일이지만 대충먹으면 그만이다. 허기진 배만 달래면 하루가 지나간다. 그렇게 생활하면 밥이 맛있는 것도 모르고 필수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저 먹는 의미로만 밥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마치 중국사람 처럼 밥은 많이 퍼왔다. 보기만 해도 배부를 정도로 많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서로 라이터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담배연기가 피어오르자 드디어 편안해졌다.

 

“교수님 비밀 있는 거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노교수 말씀이요? 비밀?”

“예, 연구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모르고 계셨군요. 하긴 모르는 게 나아요.”

 

가만히 있어보았다. 도대체 비빌 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하지만 나는 그 노교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담배를 피우며 피어오르는 연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즈음 그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사랑을 반대해서 원했던 사랑을 빼앗긴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 교수 젊었을 적 사진 보니까 꽤 잘생겼던데 지금은 별로지만... 그때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 좋아 했었나 봐요 결혼을 하겠다고 아버지를 찾아 갔는데 반대를 했답니다. 여자가 정신지체 장애인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죠 그래도 사랑하니까 둘이서 몰래 결혼을 했는데 더 불행한거는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도 엄마와 똑 같은 증상으로 태어났어요 결국은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큐베이터에서 죽었으니 얼마나 슬퍼요 인정받지도 못한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잃고 여자는 한달후에 자살을 했데요 그후로 재혼도 안하고 혼자 살다가 자신도 병에 걸려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무슨 암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군요”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아니, 비밀을 알아버리고 거짓말이라고 생각도 했었지만 어찌됐건 지어낸 이야기라도 슬펐다. 그날 노교수의 수업은 들어가지 않았다. 공원 벤치에 않아 맥주를 마셨다. 옆쪽으로 잔뜩 쌓아놓은 책들을 다시 반납하고 싶었다. 기운이 빠지더니 두개의 달이 생각났다. 문득 엉뚱한 그 문자 메시지들이 생각나서 핸드폰을 열어 몇 자 두들겼다. 이렇게 하면 나도 바보스러워 지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라도 하고 싶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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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저 다녀 왔어요" "신혼여행 갔다 온겨?" "할아버지 저 외국서 공부 하다고 돌아 왔어요..." "오호 참 그렇지. 그래 어서 오너라. 그런데 니 처는?" "할아버지 저 경락이예요. 아버지가 아니라." "아 그래 닮았어, 닮았어.." 마지막 대화였다. 내가 유학가 있는 동안 치매가 심해지신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 할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아직도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관이 화마로 들어가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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