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화 ; 드라이브]
노교수는 드디어 두개의 달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이제 세계의 경제가 변화할 시기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너무도 오랜 시간동안 경제는 자본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이 모순된 결과물에 대한 오류를 인정해야 하며 두개의 달은 세계경제가 아니라 우주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으며 지금 현재를 완전히 뒤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쨌거나 저 노교수는 지금 자신의 추억이 사라지는걸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노교수의 그 아픈 추억만큼은 잊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부인에게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 살아왔을 고통스러움을 알 것 같다.
노교수가 걸린 병이 저 두개의 달과 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고통의 추억을 기억해내지 말고 그대로 저 달로 채워져서 죄책감 같은 것 없이 편안하게 떠났으면 좋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나는 처음으로 노교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연기를 보았다.
- 이제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거예요 아직 당신이 살아있다고 안심하면 안돼요 달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
현정씨가 초인종을 눌렀다. 맥주를 잔득 사가지고 와서는 오늘은 시간이 괜찮은지 물어봤다. 안된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괜찮다고 해버렸다. 현정씨도 요즘 들어 계속 우울해 있는 것 같고 두개의 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저번에 이상한 메시지 때문에 그런 건 지 알 수 는 없었지만 나도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많이 심난해 보였다.
“요즘 많이 힘들어요?”
“그건 왜? 내가 힘들어 보여? 괜찮아 아직 나는 멀쩡해”
하지만 현정씨 눈에서 눈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나는 담배 하나를 꺼내 현정씨에게 권했다. 거절당한 담배 한 개비는 내 입에서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왜 그래요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죠? 말해 봐요”
현정씨는 눈물을 거두고 붉어진 볼과 눈으로 나를 보았다. 슬픈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남편이 찾아왔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위자료를 주겠다고 하더군 법원에서는 기각했었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미안하다며 위자료를 청구하라고 하더라고 나는 괜찮다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더니 아이를 달라는 거야 자기가 키우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아이는 절대로 줄 수 없다고 하니까 그 사람 뒤에서 변호사가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위자료는 부인이 물어야 된다고 하잖아 아니 다 끝난 일가지고 지금 와서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 법원에서는 내가 자녀를 양육할만한 경제적 능력과 직장이 없다는 이유에서 그런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한거야”
“현정씨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 뭐예요?”
“어?”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런 추억”
“글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런데 갑자기 왜”
현정씨는 자신의 고통을 울면서 까지 늘어놓았는데 고작 대답이 그런 허무한 얘기에 화가 난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유치한 추억 따위가 아니야 난 지금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고”
“하지만 이 현실도 내일이면 추억이 될 수도 있어요. 현정씨에게 제일 소중한 추억은 지금이예요 그렇죠?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을 볼 수 없고 그러면 아이들에 대한 추억도 모두 사라지니까”
현정씨는 이제서야 담배를 입에 물고 필터에 붉은 루즈를 묻혔다.
“맞아 지금까지 살면서 내 아이와 같이 했던 시간만큼 소중했던 시절도 없었어. 글쓰기를 죽도록 싫어했지만 아이들 임신하고부터는 육아일기를 매일 썼어 지금도 쓰고 있는걸, 아이 아빠와 싸우고 나서도 내 사진은 찢어버렸어도 아이들과 같이 찍은 건 절대 찢을 수가 없었지 너무도 소중했던 건 나보다 아이들이었어. 그래서 지금이 너무 슬픈 거야”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추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소중했던 추억을 찾지는 못했다. 현정씨는 쇼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혼자서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나는 아직 취하지 않아서인지 졸음이 오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두개의 달이 선명하게 보인다. 밤이 깊어지면 질수록 두개의 달은 더욱 짙어졌다.
갑자기 순간의 적막을 깨는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마자 순간 문고리를 놓치고 말았다. 깜짝놀라 한발 뒤로 물러섰더니 지영은 스스로 문을 열었다. 멀쩡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약간 취했는지 몸을 비틀거렸다.
“나 좀 데리고 나가줄래? 나 떠나고 싶어 지금”
“취한 것 같다. 집까지 데려다 줄게 잠깐만 기다려”
현정씨 한테는 미안하긴 했지만 차 좀 빌려야 했다. 자고 있는 현정씨 손에서 차 열쇠를 훔치듯이 살짝 가지고 나왔다.
“떠나고 싶어 집으론 가지마 부탁이야”
취해서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현정씨 차에 태웠다. 지영을 뒷좌석에 눕히고 시동을 걸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를 찾아왔는지 생각했다. 출발을 하고 나서 조금 있다가 지영운 설며시 일어나 내 어깨를 잡았다.
“시현아 부탁이야 우리 떠나자 나 아직 정신 멀쩡해 어디로든 가고 싶어”
진심일까? 진짜 취하지 않은 걸까?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영이 집으론 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무작정 달렸다. 어디든 어디로든 내가 가는 방향대로 그렇게 차는 움직여주었다. 두개의 달은 너무도 밝았다. 유리창으로 두개의 달이 동시에 비추고 내 얼굴도 비추고 있었다. 초승달이었던 달은 많이 차올랐다.
이제 내가 될 수도 있었고 또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영과 같이 어디로 간다는 것이 즐거웠다. 속도는 점점 올라갔다. 더웠는지 지영이 창문을 열었다. 상쾌하게 바람이 들어왔다. 에코 브릿지를 지나고 나서야 도시를 빠져 나왔다. 나도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길이 있으면 무조건 달렸다. 차들도 없었고 이 도로위에는 두개의 달이 비추는 나와 지영뿐이다.
“미안해”
“...”
“미안해 정말이야”
“괜찮아 달밤에 드라이브 하는것도 나쁘진 않은데 뭐”
“바보야! 그게 아냐 그게 아니라고 나 너 좋아해 아주 많이 내가 먼저 말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가 거절할까봐 그게 두려웠어 애초에 없었던 일이었으면 아니, 차라리 몰랐던 거라면 좋았을 거야 이젠 늦었어”
밤안개가 자욱했다. 속도를 줄였다. 밤이슬로 도로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지영이가 날 좋아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도 좋은 밤이라고 생각했다. 달빛을 반사해낸 도로는 밝았다.
“시현아 부탁이 있어”
“뭔데?”
“나 기억해줄 수 있지? 내 사진 가지고 있는 거 많을 거야 그치? 그걸로 날 기억해줘 나는 너를 기억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았어. 몰래 나를 좋아하는 네 모습이 좋았고 꼬박꼬박 보내주는 문자도 고마웠어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 준 것도 행복했어 하지만 그런 기억은 잊어버렸고 다시 기억하려고 하면 기억이 나지가 않아 같이 했던 기억, 그것만은 꼭 간직하고 싶었는데 보고 싶어서 눈감으면 너는 보이질 않아 난 그게 미안했어 너를 자꾸만 잊어가고 아니 잃어버리고 있다는 걸 정말이지 미안해”
차를 멈췄다. 주변은 너무도 조용했다. 차가운 엔진소리와 데워진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영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이 몸을 휘감았다. 이제 더 이상 지영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두개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은두개의 달 중 하나를 확인하지 못했다.
“나도 말할 기회를 줘 지영아!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너를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뜨거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나의 소중한 기억이고 추억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찾고 싶었던 것, 살기위해서 생각해야 했던 것이 지영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그런 소중했던 기억을 생각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소중한 추억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그 추억을 나는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
- 이제 삶은 남겨진 사람들의 것이 예요 당신이 살아있다면 이미 느꼈을 겁니다. -
THE END.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