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호기심.

웨이트리스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흥미를 끄는 성격은 아니었다. 더욱이 호감가는 스타일도아니다. 필시 웨이트리스의 취향이 독특하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호기심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가 의자를 당겨 앉자 그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이내 여자는 다시 뒤로 물러나야 했다.
“분명 같은 풍경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낌은 다르죠 동일 선상에서의 상대성이라고 할까 어쩔 수 없는 거죠 당신의 습관과 기억은 저의 그것과는 다를 테니까 난 쉽게 이해할 수 없네요. 5일 내내 일하고 새벽이 돼서야 가로등만 켜져 있는 정말 가기 싫은 어두운 집으로 가야 한다는게 무섭고 두려운 일이에요 에스프레소를 싫어하고 우유를 더 좋아하죠 재미없는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뭔가 즐거운 일을 찾아 다니는 주말은 목적과는 다르게 더 지루한 시간일 뿐이예요 당신의 재채기 만큼이나 철학적이거나 특별한 건 아니니까 인생은 사람들의 본능적 인게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당신의 알레르기가 남들과 다르게 구별되니까 그 속에 갇혀 버린 건 아닐까요?”
웨이트리스는 뭔가 숨겨 놓은 것을 털어 놓듯이 시원한 목소리로 그에게 대항했다. 왠지 자기 삶을 철학적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인생관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이 있는 듯 했지만 호기심은 가라앉지 않은 듯 했다.
특히 그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이 많았는데 여자알레르기와 아리스토텔레스,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들을 빌어 자신의 희생적 삶에 합리화가 아니냐는 상당한 수준의 독설도 나왔지만 그는 오히려 좋은 토론상대를 만난 것처럼 좋아했다. 웨이트리스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어쩌면 그에게 한발자국이라도 다가갈 수 없음에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대화는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랜지 색 지브리 야구모자는 더 이상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불편했다. 몇 번이나 허공을 돌아다니다가 식은 에스프레소에 빠질 뻔 했다. 이사오 사사키는 이제 지루해졌다. 레드문에 손님은 벌써 몇 번째 바뀌다가 두 명의 여학생이 뭔가를 주문하자 웨이트리스는 주방으로 달려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그는 조명아래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테이블 옆에는 벌써 다섯 권째 책이 쌓여있었지만 내가 앉아있던 것을 알았을까 참치샌드위치와 에스프레소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나는 왠지 방금 들어온 두 여학생에게 관심이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학생들이 시켜놓은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깔끔한 소녀들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전엔 사람들 몰래 먹는 것에 접근 하는 법도 익숙해서 굶거나 먹고 싶은 걸 못 먹은 적이 없었는데 요즘 사람들이 예민해졌거나 청결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역시나 많이 늙은 탓이리라 결국은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곳에 적응을 못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나도 이제 그럴 때가 온 것 같다. 실증이 나는 것도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울증 비슷한 뭔가 가슴속 꽉 막힌 듯 하다. 난 수년째 오염된 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시대의 적응력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젊은 파리들에게 가르쳐 줄 기술이나 노하우도 없다. 눈이 아플 정도의 밝은 세상과 시끄러운 시내를 돌아다닐 워밍업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그것도 구닥다리 방법일 뿐이다.
마치 인간세상에서 흔히 이야기 하는 세대차이라도 나듯이 우습게도 이러한 인생이라면 쉽게 자살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위의 권유가 뿌리치기 어렵다. 인간들은 파리가 3년이면 수명이 끝난다고 믿고 있다. 불과 몇 세기도 안되는 사이에 그렇게 믿어버린 것이다. 파브르가 파리들을 연구하기 전까지 우리들은 충분히 오래 살아왔다.
살충제와 파리채, 사실 우리들은 매운 연기에 눈이 따끔거리는 살충제보단 고통없이 한방에 끝나는 파리채를 선호한다. 그러나 인간들을 원망하거나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다. 머리가 나빠서였을까 그들의 위력이 대단했기 떄문일까 나는 어디까지나 귀찮기 떄문에 그랬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인간의 습성에 꽤 근접하게 그리고 동시에 진화되어왔다.
자신과 이야기 해야 한다며 여자가 다짜고짜 그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두 여학생의 샐러드를 훔쳐먹으러 갔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던 두 여자 중 한 사람이 틀림없었다. 한눈에 알아볼 정도의 뚜렷한 이목구비에 짙은 눈썹을 하고 있었다.
딱히 미인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모자랐다. 고집있어 보이는 눈매와 말투가 거슬렸다. 긴 생머리는 어깨를 타고 내려왔고 검정색의 미키마우스 티를 입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여자의 손등에 앉았다. 여자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 듯 했다. 여자는 10분이면 된다며 청했다.
여자는 근처 대학에 심리학부 학생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어떤 인간적 연구 가치를 느낀 것 같았다. 아마도 연신 재채기를 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높이 쌓인 책도 그렇고, 어쩐지 한눈에 연구대상이라고 알아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직감적인 것이지만 샐러드 훔쳐먹기에 실패하고 엿들은 내용을 그에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그 상황을 관망하는 여유로운 나의 자세는 평생의 유일한 재미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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