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종일 비가 온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때문에 양치도 하지 않았다. 휴일도 아니였고 누가 이 답답스런 집을 방문하기로 한 것도 아니며 기다리는 전화나 편지가 있는 있는 눈치도 아니다. 뭘까, 도대체 이 사람, 뭐 하는 걸까?
나는 자살을 시도했다. 무작정 날아가 마르크스 8페이지에 올라앉았다. 조금만 있으면 그의 손이 나를 덮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충격, 고통, 그리고 죽음이다. 조금 빠르게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고통을 덜 받기 위해서 그가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한 손 동작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마 몇 초 정도, 그 정도면 살아있는 심심하고 무료한 그 고통 자체가 외롭게 사라지겠지,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그렇게 느꼈을 내 아내처럼 마이다. 하지만 얼마후 난 아내처럼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워밍업이라고도 할 것 없이 그의 가방안에 들려진 채로 밖으로 나갔다. 새벽 안개가 자욱히 어둠을 감싸고 차가운 한기가 내 머리까지 들어와 있었다. 오전, 오후, 저녁 까지 석고상 처럼 도를 닦던 그가 레드문에 도착한 시간은 이제 막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그의 늦은 방문에 놀란 듯 하지만 의외로 반가워 했다.
검정색과 붉은 색이 잘 어울어진 앞치마를 두르고 짧은 머리 임에도 올려 묶인 머리는 그녀의 얼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스타일이 었다. 테이블들은 깨끗이 닦여 있었고 그녀의 손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일단 하루종일 굶었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주방으로 갔지만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고 쓰레기통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밖에는 어느새 가느다란 비가 커다란 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왜 이렇게 늦은 시간이 되어서 레드문을 선택했을까? 다행이도 그녀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건네주었다.
“창가쪽에 앉으니까 이상해 보이네요 무슨일이라도 있어요? 매일 어두운 곳에 있어서 빛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혹시 알레르기와도 상관이 있나요?”
“상관없어요 빛을 싫어하긴 하지만 지금은 밤이잖아요 빛이 있을 리 없고 비까지 오네요 제가 좋아하는 날씨에요, 모든 걸 잊고 생각하는 것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을 긍정하게 되는 날씨군요 하지만 상대적인거죠 빗소리 한번 들어봐요, 어떤 진실된 의미를 찾을 수 있나요? 그건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달라요 빗소리가 좋을 수 있고, 그렇지 않고 귀찮은 사람들도 있죠, 내가 알레르기를 견디면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에 노력하는 이유도 그 상대성 때문이에요,”
“어렵네요, 장마철이나 겨울같은거 그냥 좋아하면 되지 상대성이니 뭐니 너무 복잡하네요 저는 그냥 느낌 자체로 이해되는 문제인 것 같은데…”
“이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다만 해석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난해한 현대 음악을 들었다고 해두죠 보통사람들이라면 대중음악과는 다른 그 특이하고 무서운 음악을 이해하라고 한다면 화부터 낼 거예요 물론 전문가 들은 나름데로 이해 하려고 노력정도는 하겠죠 보통 사람이건 전문가이건 그 음악을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어려워 지겠죠 그러나 해석에는 정답도 노력도 필요 없어요 단지 그렇게 느끼고 나서 비판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이나 매우 개인적인 겁니다.”
밤이라서 그런지 그의 목소리는 어두운 조명을 타고 간지럽게 들렸다.
“그럼 당신도 내 이야기에 해석 정도 하나는 해줄 수 있겠군요 그렇게 자 알고 있으니까요.”
웨이트리스는 자신이 오래도록 고민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마치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비밀의 이야기라도 하듯이 너무도 작게 들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난 혼혈이에요 누구든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마도 정체성에 문제인 것 같아요 엄마가 프랑스인이고 아버지가 한국분이시죠 지금은 서로 헤어져 있어서 두분 다 만나기 어려워요 문제는 그런 무책임에도 저는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는 게 답답할 뿐이예요 사는게 싫기도 많아서 세상을 탈출하고도 싶었고 자살 같은 것도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우연히 엄마의 일기를 보게 됐고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돈을 벌고 있어요 뭐랄까 꿈인 생긴 듯 해요. 멋진 곳이래요 프랑스라는 곳… 프랑스에선 요리를 배우고 싶어요 뭔가 자그마한 인생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뭐든지 프랑스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내가 자살을 결심하고 나서도 더욱 살고 싶어하는 가치를 느끼기 까지 그리고 극과극의 너무도 다른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해서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가 하는 거에요 ”
그는 심하게 무언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웨이트리스의 질문에 답을 하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별을 보고 싶다고 했다. 도시에서 그렇게 뚜렷이 별을 보기란 힘들지만, 웨이트리스가 말한대로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지금 시간대에는 흐리지만 어느 정도의 별은 볼 수 있었다.
“별이 떨어질 때 소원비는 거 말이죠, 무엇이든 소원빌땐 똑 같겠지만 특히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때는 의심하면 안된대요 혹시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소원에 대해서 의심하면 이루어질 소원도 포기하고 만대요”
촉촉한 거리를 걷는 두사람, 왠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7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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